도처에 초록이 번지는 시기다. 이즈음,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만끽하고 싶은 이들에게 자연은 마음껏 그 품을 제공한다. 하지만 자연이 빛나는 장소일수록 정작 자연보다는 인파로 넘쳐나는 게 현실. 전통정원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잡한 도심 속 빌딩숲이나 흙냄새 섞이지 않은 베란다 정원의 기억 따윈 한 순간에 잠재워줄 천연의 정원,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풍경에 잠시 취하여 자연과 한나절 유희에 빠져도 좋으리라.

옛 왕족의 풍류를 흉내내볼까

나들이에 많은 시간을 내기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는 도심 속 옛 정원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옛 왕족들의 풍류에 있어 빠지는 법이 없었던 궁궐의 정원들. 그 중에서도 창덕궁 후원은 전통정원이 가진 아름다움을 구석구석에서 보여주는 궁궐 정원의 백미다.  

일제시대 ‘조선의 궁원(정원)은 상당히 비밀스럽게 생겼다’는 의미의 ‘비원’으로 비하된 창덕궁 후원은 현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다. 다양한 정자와 연못, 수목이 한데 어우러진 대표적인 전통정원인 까닭이다.

북쪽 깊은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옥류천 인근 지역은 소요정, 태극정 등의 정자와 더불어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뽐내는 풍광의 정점이다. 임금과 신하들이 이곳에 둘러 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하니 그 풍류가 절로 느껴진다. 하루가 다르게 초록이 부푸는 초여름, 창덕궁 후원은 풋풋한 자연의 냄새를 뿜어내며 일상으로부터의 온전한 휴식은 물론 옛 왕족이 된 것처럼 품위 있는 나들이 길을 선사할 것이다.

지난해 일반에 개방된 창덕궁 후원은 오는 11월말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창덕궁 전체를 자유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1시간 20분으로 제한했던 기존 관람에 비해 자유 관람에 참가한 관람객들은 시간제한 없이 여유 있게 정원을 거닐어볼 수 있다. 더불어 아름다움이 각별한 옥류천 특별 관람코스를 별도로 운영하는데, 옥류천 특별 관람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창덕궁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전통을 새로이 빚는 곳, 희원

희원은 한국 전통정원의 멋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 1997년 개원한 곳으로, 현존하


는 한국 전통정원의 각종 모티브를 콜라주 형식으로 총망라한 전통정원의 ‘백과사전’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한국정원의 ‘교과서’인 창덕궁 후원을 중심으로 삼았고, 입구의 보화문은 덕수궁 유현문을 본떴다. 진입로의 죽림은 별서정원의 대표작인 담양 소쇄원에서 모티브를 땄다. 꽃담의 길상무늬는 경복궁 자경전의 굴뚝, 후원은 창덕궁 낙선재의 화계를 원형으로 했고, 연못은 경북 영양 서석지, 석축은 영주 부석사의 것이 모태다.


호암미술관 앞 2만여 평의 공간에 옛 지형을 복원하고, 석단·정자·연못·담장 등 건축미를 살렸다. 인공적인 맛이 강한 일본정원과도 다르고, 중국 정원의 웅장함과도 다르다. 친근함과 자연스러움이 부족한 유럽식 정원과도 구분된다. 대신 자연을 향한 우리 민족의 사랑이 구석구석 녹아들어 있다. 특히 사방의 초록이 배경이 되는 여름날의 희원은 하루나들이 코스로는 제법 긴 여운을 안겨줄 것이다.

소쇄원 정자에 올라 초록을 호령하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 자리 잡고 있는 민간 전통정원의 대명사, 소쇄원. 이곳은 조선시대 학자인 소쇄 양산보가 지은 개인 정원으로 ‘기운이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유교사상을 철저히 담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별서정원으로, 절대 팔지 말고,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양산보의 유언에 따라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사락사락 댓잎 스치는 소리가 잠시도 그치지 않는 소쇄원의 대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소쇄원의 첫인상인 광풍각이 드러난다. 소쇄원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한 광풍각은 댓잎의 노랫소리와 더불어 아래로는 경쾌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손님을 맞는 사랑방이었던 광풍각을 지나면 주인이 거처했다는 제월당이 나온다.





제월당 주변에는 회화나무와 산수유, 그 옆으로는 편백나무와 석류나무 등이 자란다. 나무의 수령으로 보아 후대에 심어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아무 나무나 함부로 심은 것은 아니다. 회화나무는 원래 선비나무로,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한다고 해서 학자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상서롭다 해서 길상목(吉祥木)으로도 불렸다. 산수유는 가문의 번성을 뜻하는 나무다. 철쭉은 꽃의 크기가 다른 꽃보다 크고 화려해서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그러고 보면 소쇄원의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에도 옛 주인인 양산보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있는 셈이다.


그 외에 가볼 만한 전통정원

섬 속의 정원, 완도 부용동 정원

고산 윤선도가 51세 때 제주도로 내려가던 중 보길도의 경치에 매료되어 지은 별서정원이다. 그가 ‘선경’이라고 찬탄했듯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한국식 전통정원으로 세연정 일대가 이곳의 핵심 구역이랄 수 있다. 산에서 흘러내려온 시냇물을 막아 만든 세연지와 회수담이 있고, 두 연못 사이 인공 섬에 세연정을 세웠다.


조선시대 민가의 정원, 양양 서석지 정원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민가 연못. 요(凹)자형 연못의 물 위로 드러나거나 잠겨 있는 바위들인 서석군(瑞石群)이 이곳의 주요 풍경으로 서석지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바위는 대략 물 위에 보이는 것이 60개, 잠겨 있는 것들이 30개 정도이다. 이곳 주인이었던 석문 정영방은 이들 바위마다 유교적 생활철학이나 도가적 염원 등을 담은 이름을 붙여 두었다. ‘탁영반’은 ‘세상이 올바르면 벼슬을 하고, 어지러우면 은둔한다’는 뜻을, ‘관란석’은 ‘배우는 자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도에 이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sununion.tistory.com/trackback/48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건강한 삶, 즐거운 삶,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가치노을의 세상이야기 by 가치노을

공지사항

카테고리

가치노을 (475)
세상이야기 (251)
여행이야기 (15)
자동차이야기 (78)
일상다반사 (93)
아침을 여는 좋은글 (38)

글 보관함

Total : 93,486
Today : 2 Yesterday : 26
믹시